시대의 라이벌,
정치가, 기업가, 예술가 등 개인의 범주를 넘어 시대에 영향을 끼친 이들에겐 모두 라이벌이 있다. 그들은 서로를 넘어서려고 대립하면서도 경쟁을 통해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한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기 자신은 물론, 세계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시대의 라이벌을 통해 경쟁의 참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IT계의 역사를 새로 쓰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세계를 대표하는 경영자이자 시대의 아이콘입니다. 30여년간 경쟁하면서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모바일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있게 한 윈도우는 스티브 잡스가 만든 운영체제를 빌 게이츠가 개선시켜 만든 것이다. 빌 게이츠가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를 빼앗은 것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실리콘 밸리의 신화’에서 스티브 잡스가 빌 게이츠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자, 빌 게이츠는 ‘난 훔치지 않았어. 모든 자동차에는 핸들이 있지만,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 때 핸들을 최초로 만든 회사에게서 훔쳤다고 말하진 않잖아’ 라며 오히려 큰 소리를 낸다.
이처럼 빌 게이츠는 앞서 가는 기업의 제품을 분석하고 개선하는 방법으로 또 다른 제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그리고 빠른 시간 내 사람들에게 선보임으로써 상대방보다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제품이 다른 기업보다 독창적이고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것이길 원한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편이다.
두 사람의 대조적인 제품 개발과 경영방식으로 인해 현재의 IT산업이 발전했고, 우리의 일상생활도 편리해졌다.
르네상스를 완성한 두 거장,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다비드 상’ ‘천지창조’의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를 완성한 거장들이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며 수준 높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1504년에는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이 피렌체 정부 대회의장을 꾸미는 대규모 벽화 프로젝트에 참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높이 10미터, 폭 2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벽면 2개가 마련되었는데 한쪽 면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리고 다른 한쪽 면은 미켈란젤로가 그리도록 주어진 것이다.
당시 50대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느 정도의 명성이 있었던 지라 20대인 미켈란젤로와 한 자리에서 기량을 겨뤄야 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다. 미켈란젤로 역시 조각가로서의 명성은 있었지만 화가로서의 실력은 검증받은 적이 없어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명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다양한 스타일로 벽화를 그려나갔다. 하지만 모두에게 부담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벽화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말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새롭게 변화를 준 작업이 중간에 뜻대로 풀리지 않자 벽화 프로젝트를 포기했고, 미켈란젤로는 로마에서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렌체를 떠났다.
비록 벽화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두 사람에게 자극제가 되어 이후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예술적으로도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기 문명을 완성한 천재 발명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가 전기다. 19세기 말 미국의 발명가인 에디슨과 테슬라는 새롭고 더 밝은 빛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두 사람은 한테 에디슨 연구소에서 함께 많은 발명품을 개발하며 연구에 몰두했지만 직류와 교류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테슬라가 연구소를 나오게 된다. 직류 방식으로 사업을 벌이던 에디슨은 점차 교류 방식 송전사업이 크게 성장하자 자신의 직류 방식만이 안전하다고 주장했고,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보다 자신의 교류 방식의 전기가 더 뛰어나다고 확신하면서 의겨눙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상대방보다 더 완성도 높은 전기를 발명하기 위해 연구에 집중했다. 에디슨은 발명에서 나아가 관련 산업까지 창출해내는 기업가로서의 모습까지 보여 주웠고, 테슬라는 25개국에서 272개의 특허를 획득한 세기의 발명가가 되었다.
1917년, 테슬라는 미국전기공학자 협회 시상식에서 ‘에디슨은 이론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사전에 그 어떤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이라고 하며 에디슨을 찬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