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설치 – 빅토리아 홀 참사
영국 잉글랜드 선덜랜드의 빅토리아 홀은 1872년에 지어진 건물로 3,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빅토리아 홀은 갤러리와 3층까지 관객석이 있는 공연장이 있어 콘서트, 종교행사, 연극 등이 열렸다. 1883년 6월 16일, 빅토리아 홀에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란 주제로 마리오네트와 마술 공연이 진행됐다.
이날 2,000명 넘는 관객이 모였으며 공연이 끝나고 장난감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많았다. 공연이 끝나고 약속했던 장난감 증정 행사가 진행되었다. 공연 티켓에 적힌 숫자로 추첨해 던져서 선물을 줬는데 장난감과 사탕은 3층까지 닿지 않고, 1층에 떨어졌다.
2층, 3층에 있던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려고 출구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계단이 너무 좁았다. 게다가 티켓 검사를 하기 위해 공연장 문을 50cm 정도만 열어두고 못으로 고정해 두었기 때문에 나가는데 방해가 되었다.
퇴장을 관리하는 어른도 없어 아이들이 달려나가다 계단과 문틈에 끼거나 넘어졌다. 넘어진 아이들에 걸린 아이들이 또 넘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순식간에 수백 명이 계단에 깔렸다. 계단 코너에서 벌어져 보이지 않아 위에서 내려오던 아이들이 블록처럼 쌓여 천장 가까이 닿는 일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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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를 파악한 빅토리아 홀 직원들은 밑에서 아이들을 구조하기 시작했지만 힘들어지자, 다른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서 아이들을 구조하고 다른 출구로 내보냈다. 이렇게 약 600명의 아이들이 구조됐다. 다른 어른들도 달려와 50cm 만 열린 좁은 문틈 사이로 아이들을 한 명씩 구조하다 문을 부시고 남은 아이들을 탈출시켰다.
이 사고로 빅토리아 홀에서 183명의 아이들이 압사했다. 한 성경학교는 학생 30명 모두를 이 사고로 잃었다. 빅토리아 홀 참사는 아이들이 너무 좁은 곳으로 몰려서 일어난 안전사고였다.
이 참사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비상구를 설치하는 내용의 법률이 제출되어 통과됐다. 이 참사 이후 영국 정부는 건물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강제하는 법적 조치를 시작하고 바깥으로 열리는 최소한의 비상구를 만들게 했다.
사고가 일어났던 빅토리아 홀은 그후 50년간 더 남아서 흉물 소리를 듣다가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을 맞고 무너졌다. 몇몇 국내 기사에는 “빅토리아 홀 화재” 라고 말하지만 화재가 아닌 압사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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