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Issue

옷, 침묵의 살인자

옷은 제2의 피부입니다.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배냇저고리를 입고 심지어 수의를 입은 채로 화장됩니다.

어디서 잘 것인가(住), 어떻게 먹을 것인가(食)의 문제 때문에 우리는 ‘뭘 입을 것인가(衣)’에 소홀했다. ‘의식주’에서 제일 먼저 적힌 글자가 바로 ‘옷’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먹거리에 민감해졌습니다.

아무리 극소량이라도 유해물질이 포함된 음식은 적발이나 보도와 동시에 ‘손절’을 당하고, 중국에서는 잘못된 음식을 유통, 판매하는 사람은 최대 사형까지 집행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장바구니에는 유기농과 친환경 식료품이 가득하고, 아이를 키우는 집은 화장품조차 ‘천연’을 추구합니다. 세탁기에 넣을 세제는 피부에 민감하지 않다고 알려진 제품이 고가에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재료, 화장품, 세제처럼 우리는 24시간 몸을 감싸는 옷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의 저자는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옷 때문에 사람이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현대인은 잘 알지 못하고 오직 ‘디자인과 가성비’만을 결제 기준으로 삼는 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는 우리가 매일 입는 옷에 숨은 유해성을 파헤친 책입니다.

옷의 라벨에는 면 50%, 폴리에스테르 50% 등의 성분이 표기돼 있지만 표기되지 않은 50가지의 화학물질과 암과 불임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이 존재할 수 있다고 저자인 올든 워커는 말한다.

문제는 ‘염료’ 입니다.

음식을 대하는 것보다 옷을 대하는 기준이 느슨한 건 라벨 뒤에 숨겨진 은폐된 진실, 즉 “옷은 먹는 게 아니니 괜찮다”는 착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옷을 ‘먹는’ 것은 아닐지언정 독성물질은 시간이 지나며 체내에 축적된다. 화학물질 민감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라고 책은 말한다.

옷에 사용되는 산업용 화학물질은 그 성분 표시조차 안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옷을 만드는 제조업체나 판매하는 브랜드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화학 회사가 이를 일종의 영업 비밀로 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섬유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위험 요소입니다.

사용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다림질이 필요 없는 바지에 함유된 포름알데히드, 염색된 셔츠에 든 아민 성분 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성 성분을 방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옷은 소비자가 섭취하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규제에도 빈틈이 많습니다. 미국에는 관련 규제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화학물질 사용에 상대적으로 엄격한 EU에서조차 규정을 무시하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옷을 사는 소비자만이 시스템의 피해자는 아닙니다. 옷의 일차적 생산자도 때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목화 재배에 쓰는 살충제 때문에 인도와 미국 농부가 암에 걸립니다.

섬유 공장이나 가죽 무두질 공장의 근로자는 피부 질환과 호흡기 질환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높습니다.

중국 섬유 공장의 염료 폐수는 아시아 전역의 강으로 흘러드는데, 그해 유행하는 색에 따라 인근 강물 색이 빨강이었다가 파랑이었다가 보라가 되기도 한다는, 속이 거북해지는 진실도 책에서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뭘 입으라는 말이냐?

 

첫째, 일단 책은 ‘옷에도 성분 표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옷을 살 땐 모조품,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품질과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 사기성 브랜드도 골라내야 합니다. 책은 의류업체를 실명으로 거론하는데 H&M, 나이키, 리바이스, 파타고니아는 적어도 10년간 안전한 의류에 대해 고민했다고 합니다.

둘째, 채도가 높은 색, 지나치게 밝은 색, 특히 형광색 옷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정책자들은 테스트받지 않은 화학물질을 사용한 옷에 세금과 관세를 부가하고 독성 패션 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한 뒤 소비자에게 ‘리콜 권한’도 부여해야 합니다.

셋째, 무엇보다 새 옷 냄새에 흥분하는 대신 차라리 중고품을 거래해 입고, 물려 입으라고 말합니다.

같은 화학물질 때문에 모두가 똑같이 아픈 건 아니지만 당신이 아팠던 원인이 그 화학물질 때문은 아니었으리란 단정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례 #1]

2009년 환경부가 5년간 전국 326개 시설을 대상으로 35개 업종별로 폐수의 생태독성을 조사했으며, 그 결과를 보면, ‘합성염료, 유연제 및 기타 착색제 제조시설’이 가장 심한 독성을 나타났습니다.

이 시설이 내보내는 폐수의 생태독성은 평균 9.9로 폐수를 약 10배로 희석해도 실험 대상인 물벼룩의 절반이 죽었습니다.
합성염료는 천연염료와 달리 석유를 증류해 만드는 벤젠을 주 원료로 쓰며, 염료의 품질을 높이는 데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다수 사용합니다.

합성염료를 사용해 옷 등을 염색하는 염색업소 폐수의 평균 독성도 6.1로 매우 높았습니다.
폐수의 독성이 두 번째로 높은 업종은 기초무기화합물 제조시설로 평균독성이 8.8이었다. 이 업종엔 염소, 수은, 산화크롬, 산화납 등의 제조시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생태독성 4는 원 폐수를 4배로 희석했을 때 실험 물벼룩의 절반이 죽는 독성을 가리킵니다.

이번 조사에서 4 이상의 독성을 나타낸 업종은 이 밖에 도금업 6.1, 기타 화학제품 제조시설 6 등이었습니다. 반면, 생태독성이 낮은 업종으로는 의약품 제조 0.25, 비료·질소화합물 제조시설 0.43, 조립금속 제품 제조시설 0.98 이었습니다.

[사례 #2]

미국 유명 항공사 승무원 5만명에게 신규 유니폼이 지급된 건 2011년 봄이었습니다.

승무원들은 지급받은 새 유니폼을 산뜻하게 입었지만 이틀 만에 피부 발진,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직원이 속출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노조는 ‘유니폼 지급 후의 병증 사례’를 모아 유니폼 유해성을 경영진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원단 일부가 튀르키예에서 중국으로 운송되다가 인산트리부틸(TBP)이란 화학물질에 오염됐다”고 항공사는 시인했습니다. 논란 끝에 드라이클리닝 비용으로 ‘인당 135달러’가 지급됐지만, TBP는 내분비교란 물질이었습니다.

[사례 #3]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다크 워터스‘는 화학기업 듀폰의 폐기물질 유출 사실을 고발하는 실화 영화입니다.

아기 매트부터 프라이팬, 콘택트렌즈까지 일상을 잠식한 독성물질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화학을 위해 화학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제품을 만든다”는 듀폰의 자신감은 애초부터 틀린 말이었다고 영화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젖소 190마리가 떼죽음을 당하고 기형아들이 출생하는 상황은 모두 화학물질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사례가 ‘민감한 일부’의 문제, 영화 속 설정일 뿐일까.

주변을 돌아보면 발진을 일으키는 유아복, 포름알데히드가 섞인 브래지어, 심각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합성섬유 의류는 우리 주변에 헐값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ka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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