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부터 멋을 부리고 살았을까?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지에서도 동물의 뼈로 만든 장신구가 나온 것으로 보아 적어도 몇만 년 전에는 이미 몸을 꾸미는 데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몸을 꾸몄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성에게 멋져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지 생각됩니다.
멋진 뿔이나 화려한 깃털로 암컷을 유혹하는 동물처럼. 사람에게는 멋진 뿔이나 화려한 깃털이 없습니다. 그 대신 다른 물건을 가지고 장신구를 가지고 몸을 꾸미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은 옷이다. 옷은 추위나 상처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지만, 멋을 내거나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특권 계층의 색깔
사람은 선사시대부터 옷을 염색해 입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연에서 나는 여러 물질을 가지고 염색했습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식물이었습니다. 풀이나 열매의 즙이 옷에 묻으면 지워지지 않는 일이 흔하니 괜찮은 색깔만 찾으면 옷을 염색하는 데 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식물 재료로 만든 염료는 지역별로 다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쪽, 치자, 홍화, 칡 등이 쓰였습니다. 쪽은 파란색, 치자는 노란색, 홍화는 빨간색, 칡은 연노랑에서 갈색 계통의 색깔을 낼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손톱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이는 데 썼던 봉숭아도 천연 염료입니다. 첫눈이 올 때까지 물든 게 빠지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겨울이 가까워지면 조마조마하게 손톱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자연에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낼 수 있는 색은 자연스럽게 귀하게 취급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보라색입니다. 고대 유럽에서는 보라색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지중해에 사는 바다 달팽이를 잡아서 뽑아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옷을 염색하는 데 필요한 달팽이를 잡아서 염료를 뽑아내는 과정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보라색 염료는 대단히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라색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없는, 특권 계층만이 입을 수 있었습니다.
질병 치료약이 되기도 한 염료
19세기에 들어서면 공장에서 만드는 합성염료가 등장합니다.
최초의 합성염료는 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의 손에서 태어났습니다. 퍼킨은 원래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을 합성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천을 자주색으로 염색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에는 나중에 ‘모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곧 화학자들은 화학식을 살짝 바꾸는 방식으로 다양한 색깔을 내는 염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보라색, 심홍색처럼 과거에는 만들기 어렵고 비쌌던 염료도 이제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해 가격이 저렴한 데다가 품질도 일정했습니다. 이제는 굳이 황제나 귀족이 아니어도 누구나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합성염료는 쓰임새도 넓혀 갔습니다. 과학자들은 흐릿해서 잘 구분이 안 되는 세포나 세균을 염색하는 데 염료를 쓰기 시작했고, 어떤 염료는 인체 조직은 그대로 두고 특정 세균만 물들인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여기서 착안해 염료를 질병 치료약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특정 세균을 물들이는 염료에 독성 물질을 붙여서 투약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게 바로 최초의 매독 치료제인 ‘살바르산’입니다.
눈알까지 염색을?
오늘날 우리가 직접 염색을 하는 경험은 아마 대부분이 흰머리를 가리기 위한 ‘셀프 염색’일 것입니다.
혹은 머리나 피부에 물을 들이는 ‘헤나’도 있습니다. 과거 이집트나 중동, 인도에서 식물에서 추출한 염료로 머리나 피부를 물들이는 행위를 말하는 헤나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문신을 대신해 패션 용도로 쓰입니다.
드물지만, 옷이나 피부를 넘어 안구를 염색하기도 합니다. 눈의 흰자위에 염료를 주입해 다양한 색으로 물들이는 것입니다. 영화나 만화에 나올 법한 파란색 눈, 보라색 눈은 물론 악마처럼 검은색 눈도 만들 수 있는데, 아주 기괴한 모습입니다. 게다가 감염이나 염증의 위험이 있어 까딱하면 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색은 지위라기보다는 개성을 드러내는 데 쓰입니다. 어떤 색의 옷을 입는지, 머리를 어떤 색으로 염색하는지, 어떤 색 립스틱을 칠하는지, 스마트폰은 어떤 색을 쓰는지, 어떤 색의 자동차를 타는지, 피부에 어떻게 물을 들였는지…. 그래서 기업들은 제품을 만들 때도 더 멋지고 새로운 색을 입히려고 고심합니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다양하고 예쁜 색에 둘러싸여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 주위의 색은 더 다양해지면 다양해졌지, 그 반대는 아닐 것입니다. 또, 어떤 제품이 어떤 색으로 등장해 우리 눈길을 끌지 궁금해지네요.
글. 고호관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