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 ‘면제배갑’
1871년 신미양요 당시,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조선군을 보호해준 유일한 보호구.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 ‘면제배갑’이다
_
130년 전에 보여준 ‘Made in Korea’의 저력
‘Made in Korea’가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K-POP의 열풍으로 전 세계 각국에서 한국어로 된 노래를 능숙하게 따라 부르고, 세계적인 언론들은 앞 다투어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K-POP 열풍을 소개하고 있다.
이례 없는 ‘Made in Korea’ 열풍. 하지만 이미 100년 전 모두를 놀라게 한 또 하나의 ‘Made in Korea’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 ‘면제배갑’이 그 주인공이다.
물론 면제배갑 이전에도 화살이나 칼 등의 무기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은 존재했었다.
_
하지만 동물의 가죽이나 쇠로 만든 갑옷은 비싼 제작비용으로 인해 장수 등 일부 계층만이 착용할 수 있었다. 면제배갑은 소재가 면으로 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제작비용이 저렴했기에, 일반 병사들 에게도 지급이 가능했다.
솜으로 누빈 갑옷이라는 뜻의 ‘면제배갑’은 전 세계 최초로 개발된 ‘군사용 개인 보호구’다. 놀라운 사실은 면제배갑의 제작 원리가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방탄조끼의 원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방탄조끼는 총알의 운동에너지를 방탄조끼가 흡수해 총알의 속도를 늦추는 원리로 제작되는데, 면제배갑 역시 같은 원리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에 보여준 ‘Made in Korea’의 저력이다.
_
신미양요에서 조선군을 지켜준 유일한 보호구
면제배갑은 1867년, 무기제조자인 김기두와 안윤이 흥선대원군의 명에 따라 발명했다.
1866년 일어난 병인양요 당시, 총탄과 대포 등 프랑스군의 선진 무기의 위력은 여전히 칼과 활을 주 무기로 삼은 조선군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서양 국가들이 사용하는 총탄을 막을 수 있는 ‘보호구’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다양한 재료들로 수 없이 많은 시도를 통해 면사를 활용하기로 했다.
면을 한 겹, 한 겹 더해가며 실험을 거듭한 끝에 12겹이면 총탄이 뚫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13겹의 방탄조끼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완성된 면제배갑은 1871년, 미국이 개항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공격한 신미양요 때 군사 들의 보호구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최신식 무기와 총탄으로 무장한 적군에 비해 우리의 무기와 전력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했지만, 조선군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조선군은 근대 무기를 한 자루도 보유하지 못한 채 노후한 전근대적인 무기를 가지고서 근대 적인 화기로 무장한 미국에 대항해서 용감히 싸웠다. 조선군은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용맹 스럽게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어떤 자는 스스로 목을 찔렀다. 수십 명은 총탄을 맞고 뒹굴었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토록 강력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신미양요 때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이 남긴 기록이다.
_
_
보호구를 착용하는 것, 안전의 기본!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조선군의 의지. 신미양요가 조선의 완벽한 패배로 끝났음에도 조선이 문호를 개방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절대적 열세 속에서 조선군이 의지를, 생명을 지켜준 유일한 보호구가 바로 면제배갑이다.
미군에게도 면제배갑의 존재는 큰 충격이었다. 총탄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조선군을 보며 당황 했고, 결국 전쟁이 끝난 후 면제배갑을 자기네 나라로 가지고 갔다. 그렇게 미국으로 간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인 면제배갑은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스미스소시언 박물관에서 보관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 보관 중이다.
130여 년 전, 전쟁에서 조선군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준 보호구인 면제배갑. 오늘날도 수많은 이들이 여러 현장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안전모를 비롯한 보호구를 착용하고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출처: 안전보건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