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유도등 유래

센니치 백화점

비상구 유도등과 센니치 백화점 화재

1972년 5월 13일 일본 오사카의 센니치 백화점에서 발생한 화재는 118명이 사망하고 78명이 부상을 당해 일본 빌딩 화재 중 역사상 최악의 피해로 기록됐다.

센니치 백화점은 1932년 건립된 가부키 극장을 일본 회사 드림 관광이 상업 건물로 개축했으며, 1958년 12월 1일 신가부키극장 개관에 맞춰서 개장했다. 지상 1층부터 지상 5층까지는 백화점과 슈퍼마켓, 6층에는 게임센더, 7층에는 카바레, 짛1층에는 유령의 집을 테마로 장식한 카페 등이 있었다.

센니치 백화점 화재

화재는 3층 여성복 매장에서 시작되며 5층까지 번져 유독가스가 빌딩 안에 가득 채웠더. 엘리베이터도 정전되었고, 1층으로 바로 통하는 비상구가 2개, 1층에서 6층까지 각각 통하는 비상계단, 각 층과 옥상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이 있었지만 대부분 문이 잠겨 있었다. 지금은 소방법 개정으로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당시에는 소방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에 쓰지 않는 비상구는 잠가두거나 문 앞에 짐을 쌓아두는 일이 많았다.

문을 잠그지 않았던 직통 계단과 1~6층으로 통하는 계단은 환기구 등에서 올라온 유독가스가 차올라 접근이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출구를 찾다가 유독가스에 질식했고, 2~6층과는 차단되어 있던 종업원 전용 직통 계단에 있던 종업원 2명만이 비상계단을 통해 살 수 있었다.

이날 많은 사람이 사고를 당한 것은 토요일 저녁이라 7층 카바레에도 손님과 종업원이 181명이나 북적였기 때문이었다.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거나, 연기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즉사하기도 했다.

센니치 백화점 화재

화재 후 비상구 안내판의 식별이 힘들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비상구를 표시하는 픽토그램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정부는 비상구를 글자로만 표기해 온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안을 공모했다. 비상구 도안은 3,300여 건이 출품되었고 ‘코타니마츠 토시후미’의 픽토그램을 일본디자인 학회장 ‘오오타 유키오’가 약간 수정해 지금의 비상구 유도등 디자인을 완성하였다.

비상구 유도등과 함께 사용되는 ‘녹색’은 인간의 망막 시세포 중 깜깜한 곳에서 물체의 식별을 관여하는 간상세포가 가장 쉽게 알아보기 때문에 주로 고속도로의 표지판, 자동차 계기판으로도 사용된다.

일본은 1982년 자체적으로 제작한 비상구 유도등 도안을 국제표준기구(ISO)에 제출하고 국제 기군으로 사용해달라고 요청해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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